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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5화
사막 구역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고랭크 몬스터들.
그들이 헌터든 몬스터든 가리지 않고 학살하고 있다는 소식에 노관식이 급히 헌터들을 소집했다.
사실 SS랭크 몬스터가 몇 개체나 있는 상황에서 과연 저걸 인류가 막을 수 있나 의문이 들었지만,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해서 협회의 대회의장으로 모인 수많은 헌터들.
그 면면이 정말 화려하기 그지없었…지 않았다.
과거 대한민국 헌터계의 최전성기 시절과 비교하면 암울하기 그지없는 면면들.
노관식이 보기에는 아직 솜털도 다 가시지 않은 애송이들만 모아 놓은 거 같았다.
전(前) 5대 길드의 자리를 대신해 새롭게 그 자리를 차지한 신생 5대 길드.
쌍룡, 화랑, 독고, 평화, 제일.
사실 말이 5대 길드지 뒤의 세 길드는 그냥 구색 맞추기용에 불과했다.
과거 같았다면 그저 평범한 대형 길드 수준.
실질적으로 대한민국 헌터계를 이끄는 것은 쌍룡과 화랑이었다.
그마저도 쌍룡이 은근하게 화랑의 밑으로 숙이고 들어가면서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고의 길드는 화랑의 차지로 돌아갔다.
회의장 한쪽에 당당히 팔짱을 끼고 앉아 있는 송재하의 모습을 바라보며 노관식이 짧게 혀를 찼다.
그저 말 잘 듣는 사냥개였던 이가 어느새 저렇게까지 성장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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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멀스멀 세이프파워볼 차오르는 아니꼬운 마음에 노관식은 짧게 혀를 찼다.
몹시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파워볼사이트
더더욱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그런 송재하를 보좌하듯 그 곁에 앉아 있는 김수한의 존재였다.
현 쌍룡의 길드장인 전해룡의 외손자이자, 부길드장이 김판용의 손자.
별다른 이변이 없는 한 쌍룡의 다음 길드장인 확실한 인물.
이만한 사태에 파워볼게임사이트 길드장이나 부길드장이 직접 행차하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둘 다 나이도 나이고, 김수한은 쌍룡을 물려받을 것이 확실한 후계자였으니까.
단지 노관식이 파워볼실시간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김수한씩이나 되는 녀석이 송재하 곁에서 마치 그 부하처럼 앉아 있는 것이었다.
저 모습은 누가 봐도 쌍룡이 화랑의 밑이라고 광고하는 꼴이지 않은가?
소위 대한민국에서 1, 2위를 실시간파워볼 다투는 길드라면 서로 물어뜯고, 견제하며 아옹다옹하는 것이 기본이 아니겠는가?
그러는 편이 협회를 운영하는 노관식 입장에서도 훨씬 이득이고 말이다.
그런데 저렇게 한쪽이 일찌감치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는 꼴이라니.
몹시도 마음에 들지 않는 광경에 노관식이 끌끌 혀를 찼다.
그러는 한편으로는 저런 김수한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송재하의 뒤에 있는 것이 블랙 마켓이라는 것과 그 블랙 마켓의 실질적인 주인이 닉스라는 것을 노관식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SS랭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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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SS랭크의 부재로 인해 몸살을 떨고 있음에도 노관식이 태연할 수 있었던 이유.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통제 아래 헌터들을 관리하고 있는 노관식이라고 하더라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대.
닉스 때문에 야금야금 옛 5대 길드의 영향력을 그대로 잡아먹는 화랑을 모른 척 그냥 두고 볼 수밖에 없지 않았던가?
그의 존재만으로 노관식은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도 안심할 수 있지만, 반대로 그의 존재가 영 거슬리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었다.
말 그대로 계륵과도 같은 상대.
노관식은 다시 한번 차오르는 답답함에 한숨을 내쉬는 한편, 회의장에 모인 면면들을 다시금 훑었다.
어찌 봐도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 면면들.
믿고 일을 맡길 만한 이들이 없다.
그나마 쌍룡과 화랑이라면 몰라도 이 둘마저도 노관식이 마음껏 일을 맡기기에는 영 껄끄러운 상대다.
지난 1년여간 이어져 온 정책 아래 헌터계에서 협회장인 노관식이 갖는 권력은 그 어느 때보다 강했으나, 쌍룡과 화랑은 그런 노관식의 권력으로도 어쩔 수 없는 상대였으니까.
더군다나 그 뒤에 있을 닉스의 존재만으로도 노관식은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다.
권제나가 살아 있었다면 조금 이야기가 달랐을지도 모르겠다만, 이미 죽은 이의 이야기를 꺼내서 무엇하겠는가?
노관식이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며 희외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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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한 주제는 역시 사막 구역에서 한창 난리를 치고 있는 고랭크 몬스터들에 대한 문제.
사실상 지금의 전력으로는 그들을 토벌할 수 없었다.
당장 대한민국 헌터계가 아닌, 전 세계의 모든 헌터계가 나선다 하더라도 그들의 토벌은 꿈도 꿀 수 없다.
과거 인류 헌터계의 최전성기였던 시절이라면 몰라도, 지금의 수준으로는 말도 되지 않는다.
그런 만큼 이번 회의의 주요 안건은 역시 최대한 그들의 진행을 막는 것이다.
현재 파악된 바로 몬스터들은 계속해서 상층으로 향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의 목표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들이 대미궁 밖으로 나오는 것을 막는 것이 이번 회의에 참여한 모든 헌터들의 공통된 목표였다.
아니, 사실상 그들이 미궁 밖으로 나오고자 한다면 그들을 막을 방법은 없다.
그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서울 시민들의 안전한 대피와 그 대피 동안 필요한 시간을 버는 것.
그것이 바로 이번 회의의 최종적인 주제였다.
당장 시민들의 대피부터가 쉬운 일은 아니다.
현재 서울의 인구는 대략 천만 명 정도.

본격적인 대피를 시작하면 서울 인근의 모든 시민들까지 대피를 시작해야 할 텐데, 이 많은 인원이 무사히 대피하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무엇보다 대피에 대한 문제는 둘째치고서 이들이 대피할 동안 시간을 버는 것 또한 문제였다.
사실상 SS랭크의 고랭크 몬스터들을 상대로 시간을 번다는 것은 죽으러 가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
제아무리 헌터들이 제 목숨을 걸고 일하는 이들이라 하더라도, 일부러 죽고 싶어 하는 이들은 없다.
당연하게도 시간을 버는 일에 자원하는 이들이 없었다.
노관식이 끄응- 앓는 소리를 내뱉었다.
제 목숨 소중한 것은 노관식 역시 마찬가지였기에 그들의 반응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헌터들의 반응이 한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한창 노관식이 현역으로 뛰었을 무렵에는 국가와 시민들을 위해 앞장서는 이들이 차고 넘쳤었는데….
아니, 굳이 그렇게 과거까지 갈 필요도 없다.
당장 옛 5대 길드 시절만 하더라도 모두를 위해 앞장서 헌신하는 이들로 이 회의장을 가득 채웠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자원은커녕 서로 조금이라도 더 안전한 일을 차지하기 위해 다투기 바빴다.
오히려 상대에게 위험한 일을 떠맡기기 위해 으르렁거리며 싸우는 모습들을 보면 기가 차서 말도 나오지 않는다.
서로 으쌰으쌰 하며 힘을 모아도 모자랄 판에….

에잉. 나 때라면 정말 상상도 못 했을 일이다.
아무리 봐도 영 못마땅한 신생 5대 길드들의 모습에 노관식은 재차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이런 일에 발 벗고 나서야 할 쌍룡과 화랑마저도 팔짱을 낀 채 침묵하고 있으니, 노관식으로서는 더더욱 답답할 노릇.
더 참다못한 노관식이 막 무어라 입을 열려던 찰나, 불현듯 전화벨 소리가 시끄럽게 회의장을 울렸다.
대한민국 헌터계의 여러 중진들이 모인 신성한 회의실에서 전혀 용납받지 못할 일.
제아무리 노관식이라 하더라도 이런저런 항의를 받을 만한 일이었다.
갑작스레 울리는 벨소리에 시끄럽게 떠들던 이들의 시선이 모였다.
그런 시선 속에서 전화의 주인공, 송재하가 태평하게 전화를 받았다.
나지막한 송재하의 목소리가 조용한 회의실을 울린다.
“예, 여보세요…. 예? 예, 그렇습니까? 예? 아…. 그렇다면…. 예…. 예, 알겠습니다….” 시끄럽게 울린 전화벨 소리에 마침 잘 걸렸다는 듯 사납게 물어뜯으려던 이들이 그 주인공이 송재하라는 것을 깨닫고 조용히 입을 다물기를 한번.
그 송재하가 공손하게 존대를 하는 모습에 다시 한번 입을 다물기를 다시 한번.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침묵이 회의장에 자리했다.

모두의 관심 속에서 송재하가 조용히 전화를 끊는다.
그 노관식마저 차마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잔뜩 식은땀을 흘리는 송재하의 모습에 곁에 있던 김수한이 ‘헉’하고 물었다.
“설마 그분입니까?” “…아무래도 직접 움직이실 모양이군요.” “으으음…!” 낮게 앓는 소리를 내뱉는 김수한의 모습에 회의실에 모인 대부분의 헌터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직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의 짤막한 대화를 이해한 것은 노관식밖에 없었다.
김수한이 말한 ‘그분’이란 것은 필시 닉스일 터.
제아무리 세상사에 관심 없는 그라 하더라도 이만한 일에는 역시 직접 움직이는 모양이었다.
언뜻 안심하면서도, 노관식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닉스라고 사막 구역에 나타난 몬스터들의 수준을 모르는 것이 아닐 텐데?
제아무리 SS랭크의 헌터라고 하더라도 그만한 숫자의 고랭크 몬스터들을 상대로는 아무것도 못할 터였다.
그럼에도 그가 직접 나서려는 저의가 무엇일까?
혹시 그만의 숨겨진 수라도 있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을 희생해서 시간을 벌려는 것일까?

노관식의 생각으로는 아마 후자에 가까웠다.
설령 그 비밀스러운 닉스라 하더라도 무슨 뾰족한 수가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으니까.
그렇게 노관식의 오해가 시작되었다.
아…. 자신의 한 몸을 바쳐서 시민들이 대피할 시간이라도 벌려는 것이구나.
평소에는 그렇게 싸가지가 없더니, 이제 보니 사람이 정말 진국이구나…!
아아. 그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
거나하게 오해한 노관식이 울컥한 얼굴로 송재하를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그 뒤에 있을 닉스의 존재를 투영하며 노관식이 잔뜩 촉촉해진 눈가를 훔친다.
자신을 희생해 모두를 구하려는 영웅에 대한 감사.
노관식이 조용히 송재하를 향해 목례했다.
그리고 그런 협회장의 모습에 정확한 사정은 모르지만, 일단 따라 해보자는 생각에 수많은 헌터들이 함께 고개를 숙였다.
갑작스레 수많은 이들의 목례를 받은 송재하는 드물게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 미친놈들이 도대체 왜 이래?
그가 이 회의장에 와서 한 것이라고는 그저 근엄한 척 팔짱을 끼고 앉아, 얼마 전에 스노우가 해준 지도 대련을 상상한 것뿐.
그것 빼고는 닉스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은 것밖에 한 것이 없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의 반응에 송재하는 결국 앞서 그랬던 것처럼 근엄하게 입을 닫았다.
모를 때는 차라리 얌전히 입이라도 다물고 있으라고 생전의 아버지가 말했었지.
송재하는 그런 아버지의 뜻을 충실히 따랐다.

송재하와의 전화를 끊은 닉스가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머릿속으로 그동안 침묵하던 002가 처음 입을 열었다.
[맙소사! 너 방금 도대체 뭐 한 거야?!] ‘평범하게 전화를 했을 뿐이다.’ [미궁 안에서 전화라니! 뭔 헛소리야?!] 평소의 덤덤한 태도와 달리 잔뜩 흥분한 002의 목소리.
닉스가 피식이며 가볍게 웃었다.
[어떻게 했어? 어떻게 한 거야?!] ‘갔다 와서 말해 주지.’ 그 말을 끝으로 닉스가 가볍게 손짓했다.
그와 함께 눈앞에 나타난 워프 게이트를 타고 닉스가 발걸음을 옮겼다.
그 자연스럽기 그지없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던 002가 멍하니 탄식했다.
[맙소사. 이제는 게이트까지 여는 거야?]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 닉스의 행도에 002가 조용히 경악했다.
닉스가 향한 곳은 아이들이 있는 정수아의 집무실이다.
같은 미궁 안이 아닌 아예 바깥으로 나온 닉스가 갑작스레 나타난 워프 게이트와 저를 보고 놀라는 유화영과 정수아를 뒤로한 채 아이들을 품에 안았다.
[아빠!]
“잘 놀았니, 설아?” [응, 잘 놀았어!] 컁컁- 귓가를 울리는 목소리에 닉스가 다정하게 웃었다.
당황하던 것도 잠시 그런 닉스를 향해 유화영이 벌떡 일어섰다.

“잘 놀았니는 무슨! 지금 바깥이 얼마나 난리가 난 줄 알아?!” “너무 화내지 마라. 주름 생긴다.” 태평하기 그지없는 닉스의 대답에 유화영이 와락 얼굴을 구겼다.
“도대체 애들 똑바로 안 보고 뭘 한 거야?! 오빠 때문에 지금…!” 괜히 유화영의 잔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버럭버럭 소리치는 유화영과 아직 잔소리는 시작조차 못 한 정수아를 뒤로한 채 닉스가 아이들과 워프 게이트를 넘었다.
광활한 사막이 눈 앞에 펼쳐진다.
그리고 잔뜩 난동을 피우고 있는 익숙한 몬스터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한가운데 조용히 살기를 드러낸 채 뜨거운 모래사막을 한겨울의 설원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는 스노우.
닉스의 품에 안겨 있던 설이가 그녀를 불렀다.
[엄마!]
모두의 움직임이 뚝 멈췄다.
세차게 몰아치던 눈보라가 한순간에 멎으며 스노우가 느릿하게 시선을 돌렸다.
닉스와 그 품에 안겨 있는 설이와 아이들.
[아가─]
성큼- 다가온 스노우가 설이를 품에 안았다.

[어디 다친 곳은? 아픈 곳은 없니?] [응! 고모랑 같이 있었어!] [그래…. 다행이다, 다행이야.] 진한 안도감에 스노우가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스노우의 모습을 바라보며 닉스가 개구쟁이 아이처럼 짓궂게 웃었다.
[너무 걱정한 거 아닌가? 내가 분명 괜찮다고 했는데.] […그대는 돌아가면 보자구나. 본녀가 아이들을 얼마나 걱정한지 알면서….] 설이와 아이들을 상냥하게 바라보는 것도 잠시, 사납게 눈을 부라리는 스노우의 모습에 닉스가 움찔 몸을 떨었다.
[…그래서 이렇게 아이들을 데려오지 않았나?] [할 수 있었다면 진작에 그랬어야지…. 이제야 이렇게 움직인 것을 보면, 조용히 지켜보며 혼자서 시시덕거렸을 게 뻔하구나.] 조용히 저를 노려보는 시선에 닉스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모두 맞는 말이라서 할 말이 없다.
그런 닉스의 모습에 스노우가 한 번 더 눈을 부라렸다.
[집에 가서 보자꾸나.] 스노우의 말에 차마 아무런 답도 하지 못하는 닉스였다.
그런 그들의 뒤늦게 다른 몬스터들이 다가왔다.
닉스가 화제를 돌리기라도 하듯 급히 입을 열었다.
[…다 모였으니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자. 간만의 외유는 다들 잘 즐긴 거 같으니까.] 닉스가 가볍게 손짓한다.
그와 동시에 나타나는 워프 게이트.
모두가 잠깐 그 모습에 놀란 듯싶었으나, 재촉하는 닉스에 의해 급히 워프 게이트를 넘었다.
그렇게 다시금 돌아온 100계층.
이로써 일련의 사건은 다소 허무하게 끝이 났다.
물론 허무하다고 하기에는 생각보다 많은 희생이 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다시금 돌아온 집에서 닉스가 스노우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것은 모두가 아는 비밀이었다.

‘그래서 이런 일을 벌인 이유가 뭐냐?’ 모든 사건이 끝난 뒤, 닉스가 002와의 시간을 가졌다.
[그야 닉스가 자꾸 심술을 부리잖아.] ‘…심술이라고? 내가 언제?’ 전혀 영문을 모르겠다는 닉스의 반응에 002가 자신이 이번 장난을 친 이유를 설명했다.
그런 002의 반응에 닉스가 탁- 이마를 짚었다.
‘오해다.’ […오해라구?] ‘그래. 내 시간관념이 조금 잘못되었던 거뿐이다. 얼마 안 있어 모두 말해줄 생각이었어.’ [그게 무슨….?] 의아해하는 002를 향해 닉스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설명해 주는 것보다야, 직접 보는 게 낫겠지.’ 담담히 내뱉는 목소리와 함께 곧이어 002는 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 닉스가 겪어온 역사, 차라리 신화라고 불러도 좋을 그 길고 오래된 세월의 모습을.
미궁이라 하더라도 버티길 힘들었을 오래된 역사.
아니, 오히려 오랜 세월을 살아온 미궁이기에 이해할 수 있는 기나긴 고독과 절망.
002는 저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었다.
일반적인 감정은 이미 닳고 닳아서 더 느끼지 못하는 미궁이었기에망정이지, 만약 그것이 아니었다면 어린아이처럼 질질 울었을지도 모른다.
닉스가 버텨온 세월은 미궁인 002가 보기에도 그만한 것이었으니까.
차마 아무런 말도 못 하고서 가만히 입을 다문 002를 향해 닉스가 입을 열었다.
[다시 만났구나, 002.] […응. 다시 만났네, 닉스.] 잘 버텼구나, 수고했어 등의 말이 떠올랐으나, 002는 차마 내뱉지 못했다.
그저 저런 말로 치하하기에는 닉스가 보내온 시간이 너무나 무겁다.

아니, 애초에 002가 과연 닉스를 치하할 자격이나 될까?
단순히 생물로서나 영혼의 격은 002보다 닉스가 월등히 높다.
아니, 그런 것을 떠나서 이미 닉스가 보내온 시간부터가 002를 훨씬 앞선다.
그런 상대를 향해 과연 어떤 말을 해줘야 할까?
002 역시 닉스처럼 오랜 시간을 홀로 보내왔기에 알 수 있었다.
마음 나눌 상대 하나 없이 홀로 살아간다는 것은 지성을 가진 생물로서 도저히 버틸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 시간을 보내온 닉스는 충분히 찬사와 경의를 받아 마땅한 존재다.
하지만 그럼에도 쉽사리 그런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은 그 기나긴 시간이 얼마나 끔찍한지 002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머릿속을 떠오르는 이런저런 말들을 모두 집어삼킨 002는 꾹 입을 다무는 것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런 002의 반응에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듯 닉스가 조용히 웃었다.
[다른 말은 필요 없다. 동정할 필요도 없다. 결국, 나는 여기에 있으니까.]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것을 끝으로 둘 사이에 이렇다 할 대화는 없었다.
어색한 침묵은 아니다.

스스로 말했던 것처럼 닉스에게 동정이나 다른 말은 필요 없었다.
결국, 닉스는 지금 이 자리에 이렇게 있으니까.
002의 역시도 그런 닉스를 이해하기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은 것뿐이다.
닉스가 그것을 바라고 있으니까.
그렇기에 002는 닉스가 원하는 대로 조용히 침묵했다.
그것이 002가 닉스에게, 그 오랜 시간을 버텨온 이에게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이자, 선물이었다.
그리고 이런 002는 잘 모르고 있었다.
단순히 닉스가 보여준 긴 시간 그 자체에 집중했기에 전혀 깨닫지 못했다.
닉스 역시도 모든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지만, 사실 모든 것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깨닫지 못한 사실.
의도적으로 감춘 한 가지 진실.
그 기나긴 시간의 마지막.
닉스는 그토록 돌아가고자 하던 세계를 결국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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